중종의 여자 경빈 박씨
중종의 첫 번째 부인인 단경왕후가 폐위되어 궁에서 쫓겨난 후 중종은 두 번째 부인 장경왕후를 맞이하는데, 중종반정의 중심인물인 윤임의 여동생이자 인종의 어머니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장경왕후는 인종을 낳고 일주일 후 세상을 떠납니다. 이때 미모가 뛰어나기도 했지만 아들 복성군을 낳아 중종에게 사랑을 받던 경빈 박씨가 중전의 자리에 희망을 품게 됩니다.
목차
- 중종반정 이후 후궁이 되다
- 작서의 변으로 죽음을 맞이한 경빈 박씨
중종반정 이후 후궁이 되다
1506년 연산군을 몰아내고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을 왕위에 올린 사건이 일어납니다. 바로 성희안과 박원종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중종반정입니다. '반정'은 바른 상태로 되돌린다는 의미로 폭정을 일삼던 연산군을 왕위에서 몰아내고 새로운 왕을 세워 나라를 바로 잡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실로 연산군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키며 많은 신하들을 죽였습니다.
경빈 박씨는 박수림의 친딸이자 박원종의 양녀입니다. 연산군 때 궁녀로 입궐하게 되는데, 중종의 눈에 띄어 후궁이 된 것이지요. 장경왕후가 인종을 낳고 세상을 뜨자 중종이 왕비로 삼고 싶어했던 인물이 경빈 박씨입니다.
하지만 대신들의 반대에 부딪히게 됩니다. 특히 정광필이 신분의 미천함을 이유로 들어 경빈 박씨는 왕비의 자리에 적합하지 않음을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대신들의 입장에서는 이미 원자인 인종이 있는데, 인종보다 먼저 태어난 경빈 박씨의 아들 복성군과의 관계도 고려했던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생각한 후에 중종의 왕비로 간택된 인물이 문정왕후였던 것입니다.
작서의 변으로 죽음을 맞이한 경빈 박씨
중종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나 결국 경빈 박씨는 '작서의 변'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1527년 작서의 변이 일어난 당시 경빈 박씨가 범인으로 지목되었는데, 누구도 증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경빈 박씨를 죽음으로 몬 작서의 변은 어떤 사건일까요?
1527년 2월 사지와 꼬리가 잘리고, 입과 귀와 눈을 불로 지진 쥐 한 마리가 동궁 북정의 은행나무에 걸려 방서와 함께 발견됩니다. 온 궁궐이 집중하는 사건이 되는데, 경빈 박씨와 복성군이 범인으로 지목되었습니다.
이 일로 경빈 박씨의 시녀들과 사위 홍려의 종들이 심문을 받다 죽었고, 고문을 견디다 못해 거짓으로 자백을 한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결국 경빈 박씨와 복성군이 폐서인 되어 쫓겨났습니다. 이후 다시 동궁의 가상을 만들고 나무패에 저주의 글을 쓴 일이 일어나자 경빈 박씨와 복성군은 사사되었습니다. 두 딸 혜순옹주와 혜정옹주마저 폐서인 되어 궁 밖으로 쫓겨나고, 사위 홍려도 죽습니다.
그런데 1532년 경빈 박씨와 복성군이 작서의 변의 진범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이종익의 상소에 의하면 김안로의 아들 희가 범인이라는 것입니다. 심정과 유자광에게 원한을 품어 왔던 김안로가 아들 희를 시켜서 꾸민 일이었습니다.
부마가 된 아들의 등에 업고 권력을 잡으려다 실패하자 일으킨 사건으로 당시의 큰 화제가 되었던 사건입니다.
'방송' 카테고리의 다른 글
꼬꼬무 숭례문 방화 사건 16년 전 화재 누가 왜? (0) | 2024.11.21 |
---|---|
그것이 알고 싶다 1418회 삼전동 방화 살인 사건 사라진 1시간과 13가닥 머리카락 범인은? (0) | 2024.11.03 |
꼬꼬무 서커스 소녀 심주희 (0) | 2024.02.15 |
역사저널 그날 고려거란전쟁을 부른 현종 출생의 비밀과 즉위 (0) | 2024.01.07 |
벌거벗은 한국사_세조와 현덕왕후의 저주 (0) | 2023.10.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