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기 격추 사건_KAL 007기의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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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기 격추 사건_KAL 007기의 추락

by 꿈꾸는 꿀팁천사 2023.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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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기 격추 사건_KAL 007기의 추락

1983년 9월 1일,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민간 항공기 KAL 007기 격추사건. 이 사건으로 승무원을 포함한 탑승객 269명 전원이 사망했다. 우리나라는 수색을 요구했지만, 소련 측의 거부로 비행기가 추락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은 아예 수색조차 할 수 없었다. 이 사건은 한국의 국적기가 당한 사고 중에서 최악의 규모를 기록했고, 세계의 기록 중에서도 상위에 속할 만큼 엄청난 인명피해가 있었다.

 

대한항공(출처:위키피디아)

 

목차

  • KAL 007기 격추 사건 발생
  • 칼 007기 격추사건 후
  • 칼기 격추 사건의 의문점

1. KAL 007기 격추 사건 발생

KAL 007기는 1983년 8월 31일 오후 1시 5분 뉴욕을 출발해 앵커리지 국제공항을 경유해 김포국제공항을 향해 이륙했다. 정해진 항로로 이동하던 KAL 007기가 오후 10시 27분 항로에서 11km 이탈한 지점인 카이룸산 전파국 부근을 통과한 후 레이더 밖으로 사라졌다. 1983년 9월 1일 0시 5분 KAL 007기는 소련 영토인 캄차카 반도 북동쪽 상공으로 진입했다. 항공기의 진입을 알아챈 소련은 미국 공군의 군용기로 판단했지만 캄차카 항공에 오래 머무르지 않아 소련의 방공군은 그대로 귀환했다. 그 후 KAL 007기는 소련의 영공을 통과해 소련의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오전 2시 36분 오호츠크해를 지난 KAL 007기가 다시 소련의 영토인 사할린 섬 상공으로 접근하자 소련군을 경계태세를 갖췄다. 3시 12분 KAL 007기를 추적 중이던 소련 전투기 조종사가 KAL 기를 육안으로 발견했다고 지상기지로 무전연락을 했고, 그 시각 일본 항공자위대의 레이더가 사할린 동쪽 해상에서 비행 중인 KAL 007기의 움직임을 포착하였다. 3시 20분 추적하던 소련 전투기가 조준을 맞추어라는 교신을 포함해 지상기지와 3번의 교신을 하였고, 3시 25분쯤 일본 항공자위대는 KAL기 주변에서 여러 대의 소련 전투기들이 격렬히 움직이는 것을 레이더 상에서 확인했다.

 

2. 칼 007기 격추 사건 후

우리나라 정부는 사건확인 후 성명을 발표하고, 소련의 비인도적인 행위에 강력하게 항의하고, 소련의 사과와 피해에 대한 보상, 사건책임자의 처벌, 같은 종류의 사건 재발방지에 대한 보장 등을 요구하면서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의 긴급소집을 요구했다. 이 사건에 대하여 미국, 일본, 캐나다, 영국, 프랑스 등은 강경한 자세로 소련의 만행을 규탄하며 강력한 응징을 이끌어내는 움직임에 참여했다. 먼저 서방측은 소련 여객기의 운항을 전면 규제하고, 미국은 소련과의 문화교류단절을 발표했다. 일본도 소련과의 외무장관회담, 무역회담의 중지를 고려하는 등 일본과 소련의 관계도 극도로 악화되었다. 유럽의 여러 서방국가들 또한 미국의 강경한 대응책에 동조했으며, 중국까지도 소련의 칼 007기 격추를 용서할 수 없는 만행이라고 공식 비난했다. 그리고 각 나라는 정부차원에서의 강한 대응책을, 민간차원에서는 국제조종사협회연맹이 칼 007기 격추에 대한 보복조치로 60일간 모스크바 취항 중단을 결의했다.

 

3. 칼기 격추 사건의 의문점

당시 칼기 격추 사건에 대해서는 몇가지 의문점들이 제기되었다. 칼기가 소련 영공을 침범했나, 칼기가 미군 정찰기인 것으로 오인되었는가, 소련이 칼기를 격추할 수밖에 없었는지 여부, 칼기의 블랙박스가 왜 발견되지 않았는지 여부이다. 이러한 의문점들은 칼기 격추 사건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칼기가 소련 영공을 침범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미국과 한국은 칼기가 소련 영공을 침범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은 칼기가 소련 영공을 침범한 것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칼기가 30분 이상 소련 영공에 머무르고 있어야 하는데, 칼기는 소련 영공에 10분 정도 머물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칼기가 미군 정찰기로 오인되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소련은 칼기를 미군 정찰기인 것으로 오인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련은 KAL007편이 미국의 정찰기인 RC-135와 유사한 레이더 패턴을 보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미국과 한국은 칼기가 RC-135와는 다른 레이더 패턴을 보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련이 칼기를 격추할 수밖에 없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소련은 칼기가 영공 이탈을 요청을 무시하고 소련 영공에 머물렀기 때문에 격추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은 칼기가 영공 이탈을 요청을 무시한 것은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칼기의 블랙박스가 왜 발견되지 않았는지 여부에 대해서 소련은 칼기의 블랙박스가 사할린섬 북쪽 해상에 추락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미국과 한국은 칼기의 블랙박스가 소련에 의해 은폐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칼기 격추 사건은 한국과 소련 간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다. 이 사건은 한국과 소련 간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항공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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