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의 업적과 세 가지 예언
오래전 선덕여왕을 주제로 한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다. 무려 62회까지 방송되며 큰 인기를 끌었었다. 선덕여왕은 신라의 27번째 왕으로 우리 역사상 최초의 여왕이다. 당시에 신라에는 주변 나라에는 없던 특별한 신분제도 <골품제>가 있었고, 골품제 안에 존재하는 신분 중 성골 출신만이 왕이 될 수 있었다. 아들이 없었던 진평왕은 큰 딸 덕만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는데, 그 큰 딸이 바로 선덕여왕이다. 선덕여왕의 업적과 선덕여왕의 세 가지 예언에 대해 알아보자.
목차
- 선덕여왕의 업적
- 선덕여왕의 세가지 예언
- 마무리하며
1. 선덕여왕의 업적
▶ 첨성대의 건설
선덕여왕이 신라를 다스릴 당시 주변국인 고구려와 백제가 신라를 자주 공격해 왔다. 게다가 나라 안에서는 여자가 왕이 되었다는 점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사람들의 반란도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선덕여왕은 하늘의 뜻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첨성대를 만들었는데, 현재 남아있는 기상관측소 중에서 동양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362개의 돌을 사용해 28단을 쌓아 올렸는데, 이것은 28수의 별자리를 상징하며, 창을 기준으로 한 위와 아래 각각의 12단은 1년의 12달과 24 절기를 뜻한다.
▶ 황룡사 9층 목탑의 건설
당나라 유학 중인 어느 날 꿈속에 등장한 노인이 9층탑을 세우면 이웃 나라들의 침략을 막을 수 있다고 한 승려 자장의 말을 들은 선덕여왕의 명령으로 황룡사에 세워진 탑이다. 신라의 주변에 있던 9개 나라들의 침략을 막고 싶은 바람을 담아 9층탑을 쌓은 것이다. 1층부터 주변국의 이름을 새겨 넣었는데, 일본, 당, 오월, 탐라, 백제, 말갈, 거란, 여진, 고구려가 그 나라들이다. 높이가 80m에 이르고 금칠을 입혀 화려한 자태를 뽐낸 황룡사 9층 목탑은 신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어 이정표 역할을 하기도 했다. 현재 남아있다면 동양 최고의 문화유산이 되었겠지만, 안타깝게도 13세기 몽골의 침입으로 불 타 탑터만 남아있다.
2. 선덕여왕의 세가지 예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전해지는 선덕여왕의 예언에 대한 기록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삼국유사>에 전해지는 선덕여왕의 예언을 정리해 보자.
▶ 모란꽃 예언
첫 번째 예언은 모란꽃에 관한 내용이다. 당나라 태종이 선덕여왕에게 모란꽃 그림과 씨앗을 선물로 보냈는데, 선덕여왕은 그림만 보고 모란꽃에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말을 했다. 씨앗을 심어 모란꽃을 피운 후에 보았더니 실제로 향기가 없었다.
그림 속 모란꽃 주변에 나비가 함께 그려져있지 않아 꽃에 향기가 없음을 알 수 있었다는 선덕여왕의 말에서 지혜를 느낄 수 있다.
▶ 옥문지 예언
두 번째 예언은 옥문지에 관한 내용이다. 영묘사의 옥문지에 겨울인데도 개구리가 가득 모여서 우는 것을 본 선덕여왕은 여근곡에 백제의 군사들이 숨어 있는 것을 알아내고 모두 소탕했다는 내용이다.
▶ 죽는 날에 대한 예언
선덕여왕은 자신이 죽는 날에 대한 예언도 남겼는데, 이 기록은 <삼국사기>에는 보이지 않고 <삼국유사>에만 기록되어 있다. 선덕여왕이 다른 질병이 없는 때 신하들에게 자신이 죽을 해와 달, 날짜를 이야기하며 죽은 우 도리천에 묻어 달라 말을 남겼다. 선덕여왕이 죽은 후 신하들은 그 유언을 따랐다.
3. 마무리하며
즉위 후 하늘을 읽는 첨성대와 나라를 지키기 위한 거대한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운 점에서 선덕여왕의 카리스마와 지혜를 읽을 수 있다. 선덕여왕이 나라를 다스리던 당시는 나라안으로는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왕실의 갈등이 커졌고, 나라밖으로는 지속적인 고구려와 백제의 압박을 받았다. 선덕여왕은 신라의 고립을 피하기 위해 당으로 끊임없이 사신들을 보내며 당과의 관계를 이어나간 점에서 선덕여왕의 외교력을 알 수 있다. 김유신과 김춘추를 곁에 두고 지혜롭게 나라를 이끌던 선덕여왕은 647년 여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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