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주요 왕들_백제 왕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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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주요 왕들_백제 왕 계보

by 꿈꾸는 꿀팁천사 2023.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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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주요 왕들_백제 왕 계보

백제는 한반도 중서부에 위치했던 고대 국가로 고구려, 신라와 함께 삼국시대를 구성하였다. 백제의 시조는 고구려에서 남하한 온조왕으로 마한 54개 연맹체 중 하나인 십제국으로 시작해 6세기경 마한을 병합했다. 백제는 한성도읍기(기원전 18년 ~ 475년), 웅진도읍기(475년 ~ 538년), 사비도읍기(538년 ~ 660년)의 세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한성도읍기는 백제가 건국된 시기로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세워졌다. 웅진도읍기는 백제가 고구려에 의해 한성을 빼앗긴 후 충청남도 공주에 세운 수도로 백제의 전성기인 근초고왕, 무령왕이 이 시기에 재위하였다. 사비도읍기는 백제가 웅진을 빼앗긴 후 전라북도 부여에 세운 수도로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수도로 사용되었다. 백제는 해상왕국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본과 중국과의 활발한 교역을 통해 문화를 꽃피웠다. 백제를 이끌었던 주요 왕들을 정리해 보자.

 

목차

  • 한성도읍기 시기의 왕들
  • 웅진도읍기 시기의 왕들
  • 사비도읍기 시기의 왕들

무령왕릉(출처:위키피디아)

 

1. 한성도읍기 시기의 왕들

▶ 1대 온조

온조왕은 백제의 초대 왕으로 기원전 18년부터 28년까지 재위하였다.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의 아들로 부여에서 태어났다. 주몽이 고구려를 세우자 온조왕은 부여의 졸본부여 왕의 둘째 딸 소서노와 함께 남하하여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백제를 세웠다. 온조왕은 백제를 발전시키고 강력한 국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낙랑과 말갈의 공격을 물리치고 마한의 일부 영토를 차지하였다.

▶ 8대 고이왕

제5대 초고왕의 동생으로, 사반왕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올랐다. 고이왕은 백제의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왕권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였다. 좌평제를 설치하고 관등제를 제정하였으며, 율령을 반포하여 백제를 고대국가로 발전시켰다. 고이왕은 또한 마한 지역을 정복하고 한의 군현과 대등하게 싸우는 등 백제의 영토를 확장하였다. 고이왕은 백제의 전성기를 이룩한 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 11대 비류왕

제6대 구수왕의 둘째 아들로 사반왕의 동생이다. 비류왕은 평민으로 살다가 왕위에 올랐으며, 재위 기간 동안 백제의 내정을 안정시키고 영토를 확장하였다.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 신라와 나제동맹을 맺었으며, 나제동맹은 신라와 백제의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으로 이어지고, 삼국시대 한반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3대 근초고왕

비류왕의 아들로 백제의 전성기를 이룩한 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근초고왕은 즉위 후 왕권을 강화하고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진 씨 가문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여 진씨 가문을 자신의 세력으로 끌어들였고, 담로제를 실시하여 지방을 효과적으로 통치했다. 또한, 남쪽으로는 마한 지역을 정복하고 가야 지역까지 진출했으며, 북쪽으로는 대방군과 낙랑군의 일부 지역을 차지했다. 특히, 371년에는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전사시키고 평양성을 함락하는 등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연승을 거두었다. 이로써 백제는 고구려를 제압하고 삼국시대의 패권을 잡을 수 있었다. 근초고왕은 또한 백제의 문화를 발전시키고 백제를 강력한 국가로 만드는 데에도 기여했다.

▶ 15대 침류왕

근구수왕의 장남으로, 아신왕의 아버지이다. 침류왕은 재위기간이 2년밖에 되지 않아 업적이 많지는 않습니다. 백제에 불교를 처음으로 공인한 왕이다. 침류왕은 384년 동진에서 마라난타라는 승려가 백제에 오자 그를 맞아들여 한산에 절을 세우고 승려 10명을 두었다. 이로써 백제는 한국에서 가장 먼저 불교를 공인한 국가가 되었다. 침류왕의 불교 공인은 백제의 문화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백제가 고구려와 신라와는 다른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 21대 개로왕

비유왕의 장남으로 문주왕의 아버지이다. 개로왕은 재위기간 동안 고구려의 남하정책에 대항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고구려에서 보낸 첩자 도림의 계략에 빠져 실정을 거듭했고, 북위에 대한 외교정책이 실패하면서 이를 틈탄 고구려의 공격을 받았다. 결국 왕도(王都) 한성은 함락되고 개로왕도 목숨을 잃었다. 한성 함락과 함께 백제의 한성시대도 막을 내리게 되었다.

 

2. 웅진도읍기 시기의 왕들

▶ 22대 문주왕

개로왕의 아들로, 삼근왕의 아버지이다. 문주왕은 고구려의 침공으로 한성이 함락되자 웅진으로 천도하여 백제의 새로운 수도를 세웠다. 그러나, 문주왕은 재위기간이 짧고 권신인 해구의 전횡으로 인해 많은 혼란이 있었다. 결국 문주왕은 해구의 사주를 받은 자객에게 피살되었다.

▶ 24대 동성왕

문주왕의 동생인 곤지의 아들로 진씨 세력에 의해 옹립되었다. 동성왕은 재위기간 동안 웅진 천도 초기의 정치적 불안을 종식시키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신라와의 동맹 관계를 강화하고 고구려의 군사적 압력에 대처했다. 그러나, 말년에 측근정치를 강화하고 사비천도를 계획하면서 귀족들과 마찰을 빚었고, 그 과정에서 반대파의 핵심인 백가에 의해 시해되었다.

▶ 25대 무령왕

동성왕의 아들로 성왕의 아버지이다. 무령왕은 재위기간 동안 담로제를 폐지하고 22부 사제를 실시하여 지방통치를 강화했다. 또한, 백성들에게 귀농과 정착을 장려하여 농민층의 안정을 이루었다. 그리고 고구려와 가야 지역에 진출하여 영역을 넓혔으며, 중국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로써 무령왕은 양(梁)에 보낸 국서에서 (백제가) 다시 강국이 되었다라고 천명할 정도로 백제 중흥의 기반을 마련했다.

 

3. 사비도읍기 시기의 왕들

▶ 26대 성왕

무령왕의 아들로 위덕왕과 혜왕의 아버지이다. 성왕은 재위기간 동안 사비천도를 단행하고 국호를 남부여로 바꾸는 등 백제의 중흥을 이룩했다. 또한, 불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불교문화를 발전시켰다. 성왕은 백제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 31대 의자왕

무왕의 장자로 태어나 632년 태자로 책봉되었다. 641년 무왕이 죽자 즉위하였고, 재위 초기에는 고구려와 동맹을 맺고 신라를 공격하여 영토를 확장했다. 그러나 655년 이후에는 주색에 빠져 국정을 돌보지 않았고, 나당 연합군의 침공을 막지 못해 백제는 멸망했다. 의자왕은 망국의 왕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재위 초기에는 백제의 중흥을 이끈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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