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수도
고구려는 졸본, 국내성, 평양성 등 여러 차례 수도를 옮겼다. 고구려는 기원전 37년에 건국되어 서기 668년에 멸망한 고대 국가이다. 고구려는 강력한 군사력과 뛰어난 정치, 문화로 한반도와 만주 지역의 패권을 장악했다. 특히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의 치세에 영토를 크게 확장하여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룩했다. 고구려는 668년 당과 신라의 연합군에 의해 멸망했지만, 그 찬란한 역사와 문화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구려는 졸본을 중심으로 건국 이래 발전 과정에서 국내성, 평양성 등 여러 차례 수도를 옮겼다.
목차
- 고구려 왕조의 첫번째 수도 졸본성
- 고구려의 두번째 수도 국내성
- 장수왕이 옮긴 수도 평양성
1. 졸본성
중국 랴오닝성 환런현에 위치한 졸본성은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 세운 고구려의 첫 번째 수도이다. 졸본성은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천연의 요새로 성벽은 돌로 쌓았고, 성 안에는 궁궐과 관청이 있었다. 졸본성은 고구려가 성장하고 번영하는 동안 수도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고구려는 427년에 수도를 평양으로 옮겼고, 졸본성은 폐허가 되었다. 졸본성은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2. 국내성
국내성은 고구려의 두번째 수도이다. 중국 지린성 지안시에 위치한 국내성은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천연의 요새였다. 국내성은 고구려가 성장하고 번영하는 동안 수도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고구려는 427년에 수도를 평양으로 옮겼고, 국내성은 폐허가 되었다. 국내성은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국내성은 고구려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성내에는 궁궐, 관청, 사찰, 신전 등이 있었다. 국내성은 고구려의 문화가 꽃피운 곳이기도 해 고구려의 벽화와 불상 등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광개토대왕릉비와 장군총도 있는 지린성의 국내성은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3. 평양성
평양성은 고구려의 마지막 수도로, 장수왕 15년(427년)에 국내성에서 옮겨와 고구려가 멸망할 때까지 수도로 사용되었다. 평양성은 현재 북한의 평양시에 위치하고 있으며, 당시에는 한반도에서 가장 큰 하나였다. 평양성은 대동강과 보통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천연의 요새 역할을 했다. 또한 평양성은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어 고구려의 경제,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평양성은 고구려의 수도로 사용되는 동안 여러 차례 개축되었는데, 장수왕 때에는 성벽을 쌓고 궁궐을 지었고, 광개토왕 때에는 성벽을 다시 쌓고 9개의 성을 건설했다. 평양성은 고구려의 수도로 사용되는 동안 고구려의 번영을 상징하는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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