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불교 공인을 도운 이차돈
연맹국가에서 중앙집권국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모든 힘이 왕에게 모여 왕을 중심으로 해서 나라가 통치되어야 했다. 고구려와 백제, 신라는 시기의 차이는 있으나 중앙집권국가로 발전을 했다. 세 나라의 왕들은 왕권을 강화하면서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 위한 방법으로 새로운 종교인 불교를 받아들였다. 고구려는 소수림왕 때, 백제는 침류왕 때 각각 불교를 공인하며 중앙집권국가의 체제를 완성했지만, 신라는 150여 년 후인 법흥왕 때 들어서 불교를 공인했다. 신라는 왜 불교의 공인이 늦어졌고,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목차
- 신라에 불교를 전한 아도와 묵호자
- 이차돈의 순교로 이루어진 불교공인
1. 신라에 불교를 전한 아도와 묵호자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신라에 불교를 전파시키기 위해 노력한 인물로 아도와 묵호자가 등장한다.
▶ 아도
아도는 고구려 사람으로 어머니의 명에 따라서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서 미추왕 때 서라벌로 향했다. 하지만 서라벌 사람들의 강한 배척에 불교 전파에 실패하고 모례의 집에서 3년 동안 숨어 지냈다. 그 후 공주의 병을 치료해주고 왕의 허락을 받은 아도가 천경림에 절을 짓고 머무르면서 불교를 전파하는데 노력을 쏟았다. 하지만 미추왕이 죽자 사람들이 아도를 해칠 것을 걱정해 모례의 집으로 돌아와 스스로 무덤을 만들고 죽었다.
▶ 묵호자
묵호자는 눌지왕 때 고구려를 거쳐서 모례의 집으로 와 지냈다. 양나라에서 신라 왕실로 보내온 향의 용도에 대해 알려주어서 왕실과 가까워진 다음 왕녀의 병을 고쳐주고 많은 선물을 가지고 와 모례에게 건네주고 사라졌다.
2. 이차돈의 순교로 이루어진 불교공인
법흥왕은 불교를 공인해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다. 하지만 백성들도 신하들도 새로운 종교인 불교를 받아들이는 것을 강하게 반대했다. 이 때 법흥왕의 사인으로 있었던 이차돈은 법흥왕의 고민을 알아채고, 왕에게 제안을 했다. <삼국사기>에는 법흥왕에게 전한 이차돈의 말이 기록되어 있다. "나라를 위해서 몸을 없애는 것은 신하의 절의이고, 왕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백성으로서의 의리입니다. 거짓으로 왕의 명령을 전한 죄목으로 신의 머리를 베시면 모든 백성들이 굴복하고 왕명을 어기지 못할 것입니다." 법흥왕은 이차돈의 제안에 반대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이차돈의 생각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법흥왕이 신하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신하들은 불교공인을 반대했고, 이차돈이 홀로 불교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지를 보이자 사전의 약속대로 법흥왕은 이차돈의 목을 치라고 명령했다. 이차돈의 목을 치자 젖과 같은 흰 피가 솟구치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땅이 진동했으며 빗방울이 떨어졌다. 이차돈이 죽은 후 기이한 일이 일어나자 불교를 공인하려는 법흥왕의 명령을 아무도 거스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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